2008년 04월 09일
[생각] Sonic Youth와 도스토예프스키

소닉 유스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핑크 플로이드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듣고는 좌절한 적이 있다. <Dark side of the moon>은 '그냥 좋았다'. 하지만 몇번을 반복해서 들어도 '그냥 좋았던' 그 앨범은 내게 있어서 끝내 '그냥 좋은' 앨범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러니 핑크 플로이드 최고의 명반 <The wall>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정말 몇번을 들어도 음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평론가나 다른 사람이 아닌 오로지 자기 자신의 귀로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자신에게 있어서 진짜 좋은 음악이라고.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3년 전까지만 해도 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가 최고의 소설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지금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내 인생 최고의 소설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건, 제대로 눈에 잡히지 않는 그 소설과 밤낮없이 며칠간의 사투를 벌인 끝에 그것을 완전히 정복하고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어느 분야든 완벽한 상대주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음악 역시 그런 식으로 몇번이고 들으면서 사투를 벌이다 보면 언젠가는 정복하는 날이 올거라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핑크 플로이드의 '벽'은 내겐 너무 높았다.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평론가나 다른 사람이 아닌 오로지 자기 자신의 귀로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자신에게 있어서 진짜 좋은 음악이라고.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3년 전까지만 해도 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가 최고의 소설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지금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내 인생 최고의 소설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건, 제대로 눈에 잡히지 않는 그 소설과 밤낮없이 며칠간의 사투를 벌인 끝에 그것을 완전히 정복하고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어느 분야든 완벽한 상대주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음악 역시 그런 식으로 몇번이고 들으면서 사투를 벌이다 보면 언젠가는 정복하는 날이 올거라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핑크 플로이드의 '벽'은 내겐 너무 높았다.

(소닉 유스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만 계속 하고 있지만, 어쨌든 사진은 보컬&기타 서스틴 무어.)
그 때가 재수를 막 시작했을 무렵이니까, 줄리아 하트의 <당신은 울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재발견한 시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독맨션의 편한 음악만 듣던 내가 (그렇다고 불독맨션의 음악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 내게 음악이 즐겁다는 걸 처음으로 가르쳐준 내 인생 최고의 밴드다.) 어찌어찌 줄리아 하트 3집의 메마른 우울함은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핑크 플로이드는 아무래도 무리였던 것이다. 아마 그때부터인 듯 싶다. 나는 미친듯이 음악을 찾아 헤매이기 시작했다. (솔직히 애용한 건 엔디스크다. 잘못된 일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나는 CD도 많이 사는 편이니까, 하고 자위하면서 이용했다.)
그러다가 알게 된 게, 스매싱 펌킨즈, 픽시즈, 너바나, 플라시보, 스웨이드, 블러, 트래비스, 그리고 오늘의 테마가 될 소닉 유스였다. 처음에 자주 들은 건 아무래도 대중적인 사운드를 추구했던 스매싱 펌킨즈와 마이너한 싸구려 멜로디를 신나게 연주하는 픽시즈였다. 소닉 유스의 앨범은,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조차도 한번도 듣지 않은 트랙이 있을 정도이니, 그때는 거의 스매싱 펌킨즈 앨범 재생이 다 끝나면 재생되는 (아티스트에 따라 정렬하면 S로 이어지니까) 기분나쁜 음악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정말 어느날, 우연히 <Washing machine>앨범을 들었다. 그리고 1번 트랙 <Becuz>가 재생되었을 때, 나는 그전까지 핑크 플로이드와 마찬가지로 벽으로만 여겨졌던 그들의 음악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에 의해 '소음'이 '음악'으로 재구성되고 있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소음'을 찾아내 그것을 '음악'으로 만들어갔다. 소닉 유스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건 그들의 '음악' 그 자체가 아니라 '소음'이 '음악'으로 재구성되는 과정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하고 조금 낯부끄러운 감상을 적어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알게 된 게, 스매싱 펌킨즈, 픽시즈, 너바나, 플라시보, 스웨이드, 블러, 트래비스, 그리고 오늘의 테마가 될 소닉 유스였다. 처음에 자주 들은 건 아무래도 대중적인 사운드를 추구했던 스매싱 펌킨즈와 마이너한 싸구려 멜로디를 신나게 연주하는 픽시즈였다. 소닉 유스의 앨범은,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조차도 한번도 듣지 않은 트랙이 있을 정도이니, 그때는 거의 스매싱 펌킨즈 앨범 재생이 다 끝나면 재생되는 (아티스트에 따라 정렬하면 S로 이어지니까) 기분나쁜 음악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정말 어느날, 우연히 <Washing machine>앨범을 들었다. 그리고 1번 트랙 <Becuz>가 재생되었을 때, 나는 그전까지 핑크 플로이드와 마찬가지로 벽으로만 여겨졌던 그들의 음악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에 의해 '소음'이 '음악'으로 재구성되고 있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소음'을 찾아내 그것을 '음악'으로 만들어갔다. 소닉 유스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건 그들의 '음악' 그 자체가 아니라 '소음'이 '음악'으로 재구성되는 과정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하고 조금 낯부끄러운 감상을 적어보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그 문제의 앨범, Washing machine. 1, 2, 3, 4로 이어지는 트랙을 특히 좋아한다.)
보통 소닉 유스, 하면 좀 아는 사람들은 최고의 앨범으로 <Daydream nation>을 꼽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나는 솔직히 그 앨범이 어째서 소닉 유스 최고의 명반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제 막 소닉 유스를 알기 시작한 내게는, <Washing machine> 앨범이 훨씬 더 소닉 유스 다운 앨범으로 느껴진다. <Daydream nation> 중에도 특히 최고라는 1번 트랙 <Teenage riot> 역시 별 감흥이 없기는 마찬가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앨범을 최고로 꼽은 여러 평론가들을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나는 그들의 가치체계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고급예술과 고급문화가 이전과 같은 지위를 상실한 상태에서, 평론가들이 대중문화에 고급예술의 성격을 부여해 일반인과 자신들을 구분지으려 한다는 건 알고 있고, 또 실제로 소닉유스의 음악이 평론가에게 그런 계급을 부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http://lazypop.tistory.com/2656378) 이처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음악이 사회계급적 기준으로 쓰여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문화에는 그 문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절대적, 미적 기준이 존재한다. 이러한 미적 기준을 무엇이라고 규정하기는 힘들 것이다.피카소의 그림이 고전 미술의 경직된 미적 기준을 완전히 파괴한 것처럼, 지난 역사에서 한 분야의 수준을 가늠하는 미적 기준은 언제나 파괴되며 새로 규정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히 그런 음악이나 미술, 문학작품에도 전체 계보를 관통하는 절대적 미적 기준은 분명히 존재하고, 또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귀여니의 소설이 불멸의 문학작품으로 남아 계승되는 일도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결론은 이런 것이다. 나는 아직 소닉 유스 최고의 명반을, 내가 3년 전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정복하듯 정복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Daydream nation>과 치밀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언젠가 그것을 정복하고 멋진 리뷰 포스트를 쓰는 날이 오기를. 그럼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을 내 생애 최고의 앨범으로 꼽을 날도 올까? 글쎄......
(Little trouble girl. Washing machine 앨범에서 썩 좋아하는 노래는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앨범을 최고로 꼽은 여러 평론가들을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나는 그들의 가치체계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고급예술과 고급문화가 이전과 같은 지위를 상실한 상태에서, 평론가들이 대중문화에 고급예술의 성격을 부여해 일반인과 자신들을 구분지으려 한다는 건 알고 있고, 또 실제로 소닉유스의 음악이 평론가에게 그런 계급을 부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http://lazypop.tistory.com/2656378) 이처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음악이 사회계급적 기준으로 쓰여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문화에는 그 문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절대적, 미적 기준이 존재한다. 이러한 미적 기준을 무엇이라고 규정하기는 힘들 것이다.피카소의 그림이 고전 미술의 경직된 미적 기준을 완전히 파괴한 것처럼, 지난 역사에서 한 분야의 수준을 가늠하는 미적 기준은 언제나 파괴되며 새로 규정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히 그런 음악이나 미술, 문학작품에도 전체 계보를 관통하는 절대적 미적 기준은 분명히 존재하고, 또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귀여니의 소설이 불멸의 문학작품으로 남아 계승되는 일도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결론은 이런 것이다. 나는 아직 소닉 유스 최고의 명반을, 내가 3년 전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정복하듯 정복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Daydream nation>과 치밀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언젠가 그것을 정복하고 멋진 리뷰 포스트를 쓰는 날이 오기를. 그럼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을 내 생애 최고의 앨범으로 꼽을 날도 올까? 글쎄......
(Little trouble girl. Washing machine 앨범에서 썩 좋아하는 노래는 아니다.)
# by | 2008/04/09 01:27 | 음악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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